계룡산 신원사 중악단 (中嶽壇)

 

신원사가 소유하고 관리하는 보물 제1293호

중악단은 신원사을 널리 알리기에 가장 큰 건축요소입니다.

계룡산의 연천봉() 줄기에 자리 잡은 중악단을 소개합니다.

 

 

계룡산은 신라시대에는

오악 중 서악으로 명성을 떨쳤으며
 중악:팔공산 / 동악:토함산

서악:계룡산 / 남악:지리산 /  북악:태백산

 

중악단은 국가에서 계룡산 신에게

제사를 위해 마련한 조선시대의 건축물이다.

조선시대에는 북쪽의 묘향산을 상악으로,

남쪽의 지리산을 하악으로,

중앙의 계룡산을 중악으로 하여
단을 쌓고 산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무학대사의 꿈에 산신이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

태조 3년(1394년)에 처음 제사를 지냈다고 전하며
효종 2년(1651년)에 제단이 폐지되었다.


그 후 고종 16년(1897년)에 명성황후의

명으로 다시 짓고 중악단이라 하였다.
구릉지에 동북,서남을 중심축으로 하여 대문간채,

중문간채, 중악단을 일직선상에 대칭하고 둘레에는 담장을 둘렀다.

 

 

중악단은 신원사 대웅전 우측에 위치하고 있다.

 

 

 

대문간채 뒤로 중문간채 그리고 중악단이 있다.

 

 


 

 

건물배치와 공간구성에서 단묘(壇廟)건축의

격식과 기법을 엄격히 적용하고 있다.
현재 상악단과 하악단은 없어지고 중악단만 보존되어 있어,

나라에서 산신에게 제사자냈던 유일한 유적으로서 역사적 의미가 있다.

 

 

 

 

 

대문간채 측면의 모습

 

 

대문간채 정면의 모습

뒤에 중문간채와 그 뒷편에 중악단이 보인다.

 

 

 

 

넓은 화각으로 대문간채에서 본 중문간채

 

 

 

 

중문간채 우측에 위치한 방사

고종 16년(1897년)에 명성황후께서 제단을 다시 짓고

기도를 올리면서 기거했던 방사라고합니다.

 

 

 

 

 

 

 

중간간채 좌측의 방사

 

 

 

 

중간간채에서 중악단으로 들어가 봅니다.

 

 

 

중악단 정면 모습입니다.

 

 

 

 

중악단의 현판

조선 후기 문신 이중하(1846∼1917)가 쓴 것이라고 알려진 중악단 현판

 

 

 

중악단 제단입니다.

계룡산 산신님의 영정이 있습니다.

 

 

 

중악단제

 

 

 

중문간채에서 넓은 화각으로 본 중악단

둘레담장도 한 눈에 보실 수 있습니다.

 

 


 

 

이제 역으로 중악단에서 대문간채쪽으로

카메라의 방향을 한번 돌려 나가 보겠습니다.

 

 

 

 

 

중악단에서 본 넓은 화각의 중문간채

 

 

 

 

중문간채

 

 

넓은 화각

 

 

 

 

중문간채 전체 모습입니다.

좌측 방사가 명성황후가 기거했던 곳입니다.

 

 

 

 

 

 

대문간채를 통과한 후 다시 중악단으로 방향을 돌려 보았습니다.

 

 

 

 

천수관음전에서 본 중악단 측면의 모습니다.

 

 

 

중악단은 국가에서 산신제를 지내던 곳으로

그 역사가 오래되었으나, 일제강점기에 끊어졌다가

1998년부터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복원된 중악단 산신제는 향교에서 대한제국의

사전에 의하여 고마나루 수신제와 함께 올리고 있다.

산신제는 소사() 의례로 계룡산 중악단 옆 옛 계룡단 터에서,

수신제는 고마나루에서 중사() 의례로 지낸다.

 

고려시대에는 산신제가 중사로 수신제가 소사로 모여졌다.

이와 곁들여 신원사에서 불교식 산신제를,

계룡산 산신제보존회에서 무속식 산신제를 각각 주관하여 올린다.

제의 날짜는 음력 3월 16일을 전후한 토·일요일을 넣어서 잡는다.

 

 

다음에는 산신제 모습을 사진과 영상에 담아보겠습니다.

 


 

 

 

Posted by APROTV